남한 수자원(水資源)을 활용하기 위하여 1966년 4월부터 1971년 12월까지 조사하고 1975년 12월부터 1977년 3월까지 충주다목적댐의 타당성 조사에 착수하였다.
충주시에서 북동쪽 9㎞ 지점에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우측)와 종민동(좌측)에 연접하여 1980년 1월 10일 충주댐을 착공, 1984년 11월 1일 본댐을 담수, 1985년 10월 17일 “충주다목적댐”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충주댐 준공으로 호수의 총길이는 97.2㎞(제천 42㎞, 충주 28.7㎞, 단양 20.5㎞)에 이며, 수몰지역은 충주시 2개동, 중원군 5개면 19개리, 제원군 5개면 44개리, 단양군 2읍 3개면 18개리가 수몰되었다. 충주댐으로 내륙의 바다를 형성하면서 본 댐의 명칭을 따서 ‘충주호(忠州湖)’로 명명하여 칭하고 있으나 제천시가 가장 많이 수몰되었고, 그 가운데 청풍면은 29개리 가운데 27개리가 수몰되고, 충주댐의 중심지에 위치한 충청도의 표상인 청풍명월 본향의 이미지를 극대화히기 위하여 ‘청풍호(淸風湖)’로 칭하고 있다.
청풍 고을이 잠긴 옛터에서 수경분수는 150만 충북도민, 15만 제천시민을 상징하여 150m로 용출(湧出)한다. 이 고사분수는 태양, 조명은 달, 안개분수는 새벽, 진달래 문양 분수 5개는 음양오행을 뜻하여 만물이 청풍에서 화합을 상징한다. 충주댐 수몰전 생동하는 대하(大河)는 청풍면을 중심으로 파형(巴形)으로 흐르던 남한강은 상전벽해(桑田碧海)에 수몰되었으나 아직도 강류를 굽어 보던 금수산, 대덕산, 비봉산, 성치산 등은 의구하여 청풍호반을 장방형으로 감싸고 있어 내륙의 바다에 경관이 수려하여 유람선에 승선한 관광객은 비경에 감탄한다. 청풍나루에 하선하여 청풍문화재단지, 촬영장 등을 감상하며 청풍호반에 신작로를 개설하고 산자수려한 형승과 더불어 청풍호는 관광지의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구분 | 리동별 | 가구수 | 인구수 |
---|---|---|---|
계 | 61(리동) | 3,301(가구) | 18,693(명) |
한수면 | 16 | 949 | 5,176 |
청풍면 | 25 | 1,665 | 9,514 |
덕산면 | 1 | - | - |
금성면 | 1 | 328 | 1,849 |
수산면 | 15 | 359 | 2,154 |
계 | 면별 | 리 |
---|---|---|
5개면
61개리 |
금성면 | 월굴, 구룡, 성내, 중전 |
청풍면 | 진목, 오산, 방흥, 단돈, 부산, 사오, 후산, 황석, 북진, 교리, 도화, 실리곡, 도리, 신리, 단리, 대류, 광의, 계산, 도곡, 양평, 용곡, 연론, 물태, 읍리, 연곡 | |
수산면 | 하천, 상천, 계란, 원대, 괴곡, 다불, 전곡, 지곡. 도전, 율지, 고명, 수산, 성리, 능강, 서곡 | |
덕산면 | 수산 | |
한수면 | 성암, 서운, 명오, 사기, 호운, 서창, 덕곡, 황강, 역리, 한천, 북노, 상노, 탄지, 보평, 송계 |
청풍은 제천 땅의 깊은 산양 속에 자리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산수를 배경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 온 유서 깊은 학향(學鄕)이고 청풍명월의 고장으로 그 어느 지역보다도 명예로운 지역이었는데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지역은 대부분이 수몰되고 새로 선택된 장소로 이전하였다. 청풍면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배경과 문화사적 정취를 본래의 모습으로 보존 전수해야 한다는 지역주민들의 뜻을 수렴하여 입지적 풍광에 손색이 없는 가까운 이웃으로 이주지를 선택한 것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갖게 한다. 그리하여 청풍면은 이웃 물태리로 옮겨 정착하여 새로운 고을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 충주 다목적 댐의 전체 수몰 지역은 총 76,988,069㎡(23,288,891평)에 달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피해가 큰 지역은 제천 군으로서 전체 수몰지역의 약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청풍면은 25개 마을(27개리 중)에 1,665가구가 수몰되고 9,514명이 정든 고향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보상대상 지역은 조정지 댐 수몰로 1시1군2면13리 동을 포함하여 1시3군2읍 13면 114리에 수몰지가 65,971,572㎡(19,956,410평), 이설 도로 5,454,225㎡(1,655,958평), 이설 철도 711,704㎡(215,290평)등 도합 76,988,069㎡(23,288,891평)에 이르러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건설한 어느 다목적 댐보다 가장 보상 면적이 넓다. 본 댐 및 조정지 댐 축조와 관련한 공사용지의 보상은 산업기지개발 공사가 직접 수행하였고 수몰지 보상업무는 충청북도에서, 그리고 면,리간 이설 도로 편입용지 보상은 관할 시 군에서, 국도와 지방도 이설공사 편입용지 보상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 각각 시행하여 댐 건설 공사와 수몰 지 보상 및 보상공사를 유기적으로 추진함으로서 댐 건설 공기를 1년 단축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보상대상 물건은 정확, 공정하게 조사하여 피 보상자의 억울함이 없이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관계법령이 정한 절차와 방법에 의하여 직접 보상을 실시하였다.
수몰 주민의 이주는 자유롭게 이주하도록 하고 집단 이주정착지에 이주를 희망하는 자에 대해서는 계획이주를 실시하였다. 집단이주는 희망자가 30호 이상인 경우에 한하여 이주대책을 수립하고 관할 지방자치단체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이주대책을 시행하였다.이주자를 위한 토지 등의 매수는 시장, 군수가 이주자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여 이주자가 원하는 이주정착지를 직접 수매함으로서 댐수몰 이전에 조기 이주 정착토록 하였으며 사업 시행자는 이주정착지에 설치할 도로, 급수시설, 배수시설 등 해당지역 조건에 따른 생활기본 시설비를 포함한 기타 공공시설 부지의 보상비와 설치공사비를 전액 부담하였다. 청풍면의 경우도 다수의 집단 취락 지를 조성, 수몰 민 이주에 만전을 기하였으며 모두 충주댐 담수 개시 이전에 이주를 완료시켰다. 수몰 민 이주취락은 대부분 호수주변의 좋은 환경을 찾아 집단 취락을 조성, 이주 정착시켜 평화정서를 되찾게 해주었고 골짜기마다 새로운 이설 도로를 개통하여 교통의 편의를 제공하는 등으로 생업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조치하였다. 이제 새 이주지로 옮겨 이주민들은 충주댐이 가져 생활여건의 변화에 따라 오늘 우리가 살고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영원토록 살아갈 우리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로 새 삶의 역사를 펼쳐가고 있다.
구분 | 리동별 | 가구수 | 인구수 | 토지 |
---|---|---|---|---|
제천군 총 계 | 62 (리동) | 3,301 (가구) | 18,693(명) | 12,390(천평) |
청풍면 | 25 | 1,665 | 9,514 | 5,956 |
구분 | 합계 | 영내 | 도내 | 타시군 | ||||
---|---|---|---|---|---|---|---|---|
소 계 | 충주/제천 | 기 타 | 소 계 | 서 울 | 기 타 | |||
제천 | 3,301 | 973 | 1,671 | 761 | 910 | 657 | 202 | 455 |
청풍 땅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예로부터 인심이 좋고 수려한 자연과 더불어 선현들이 많이 출생하여 충효와 예의를 숭상하고 학문과 문화를 발전시켜 온 청풍명월의 고장이요, 역사 향기 그윽한 문화유산을 많이 갖고 있어 중후한 문화적 전통을 자랑하는 고장이다. 이와 같이 유서 깊은 청풍 땅이 충주댐 건설로 면소재지를 비롯한 25개 마을이 물 속에 잠기게 되어 이주대책 계획에 의거 청풍면 소재지는 옛날 청풍을 다스렸던 치자(治者)들이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사열이(沙熱伊) 고성, 즉 망월산성이 있는 물태리에 이주단지를 조성하여 집단이주 정착하였고 기타 이주민들은 이주자들이 희망하는 새 터전에 집단 취락을 조성하여 모두 이주 정착하였으며 일부 이주민은 고향땅을 떠나 제천, 서울, 청주 등 타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새 청풍면 소재지 조성사업은 청풍면 물태리에서 207천㎡ 부지를 매수하여 100세대 (농업 44, 상업 22, 기타 34), 7기관(면사무소, 경찰지서, 학교, 우체국) 등의 입주 규모로 83년 11월에 착공하여 85년 12월에 준공하고 입주를 완료하였다. 물태리는 옛날 청풍을 다스리던 고을 중심지로서 새 면소재지를 이곳으로 옮긴 것을 청풍 고래의 역사적 정취를 그대로 보존하게 되는 것으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이 곳의 입지적 여건은 지방도 597호변에 위치하고 문화재단지, 청풍대교, 망월산 등 관광자원이 산재하고 있어 내륙순환 관광지의 요충지이다.
구분 / 공사개요 | 사업량 | 사업비부담내역 | |||
---|---|---|---|---|---|
사업시행자 | 이주자 | 지방자치단체 | 계 | ||
1. 보상금 | 용지매수 207,396㎡ | 37,189 | 70,823 | 3,453 | 111,465 |
2. 공사부지조성 | - | 620,808 | 260,579 | 193,551 | 1,074,938 |
가. 택지공 및 도로축조 | 2,778m | 190,014 | 260,579 | 168,066 | 618,659 |
나. 도로포장 | 75.79㏊ | 131,517 | - | - | 131,517 |
다. 상수도 포설 | 200T/D | 116,126 | - | - | 116,126 |
라. 하수도시설 | 1.802m | 180,541 | - | - | 180,541 |
마. 석축옹벽 | - | 2,610 | - | 25,485 | 28,095 |
3. 가로등 및 가로수 | - | - | - | 11,835 | 11,835 |
4. 공사 및 보상관리비 | - | 14,003 | - | 2,144 | 16,147 |
5. 학교시설 등 | - | - | 243,026 | 189,368 | 432,394 |
계 | - | 672,000 | 574,428 | 400,351 | 1,648,779 |
구 분 | 계 | 주 택 | 공공시설 | 업무지구 | 지방도 | 단지내도로 | 상수도 | 기타 |
---|---|---|---|---|---|---|---|---|
물태리 | 30,610 | 10,567 | 1,183 | 3,416 | 3,088 | 4,452 | 1,983 | 5,921 |
계 | 한 옥 | 모 임 | 스 라 브 | 박 공 |
---|---|---|---|---|
100동 | 3 | 9 | 71 | 17 |
청풍 문화재단지는 4대강 유역 종합개발의 일환으로 건설한 남한강 상류의 물줄기를 가로막는 충주다목적댐 건설사업으로 수몰지역내의 청풍 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문화재를 한 곳에 이전한 단지이다. 충주댐 공사는 총 공사비 5,498억 원이 투입되어 1978년 6월 3일 댐 진입로 공사를 시작하여 7년 4개월 만인 1984년 11월 1일 담수 식을 거쳐 1985년 10월 17일 준공되었으며 1972년 대홍수로 인하여 한벽루가 침수 유실되는 등 홍수를 격을 때마다 유실 또는 손상이 많았으나 강변에 있던 문화재를 모두 해체하여 청풍으로 이전 원형대로 복원하였으니 곧 청풍 문화재단지이다. 지금은 청풍호 권역의 관광개발과 더불어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내륙호반관광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본 단지는 1982년 부지조성을 시작하여 1985년까지 이전 복원하였다.
현 위치로의 부지선정을 놓고 군정자문위원과 지역원로 등 많은 의견을 수렴하였으며 1982년 6월 30일 충청북도의 이전사업계획 승인(충북 문공 1775-925)을 얻어 본격 추진하게 되었으며 동년 10월 5일 9,957평(30,628㎡)의 매매계약을 체결하였고 1984년 고가이전부지 4,018평(13,018㎡)을 추가 매입하였다.
부지 매입이 완료된 단지내의 청풍 관아 이전 지를 확정하고 부지조성을 시작하므로 본격 공사가 추진되었다. 문화재단지 조성 개장을 앞둔 1984년 6월 문화재단지를 관광명소로 가꾸기 위하여 조경공사를 추진하였으며, 1985년 5월 21일 충청북도 승인(문공 35340-9420)을 받아 정비 공사가 본격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