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벽루는 본래 청풍면 읍리에 있었으나 충주댐 수몰로 1983년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로 이건(移建)하였다. 이 누(樓)의 초창은 미상이며 고려 주열(~1287)의 한벽루 시는『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어 초창시기가 통일신라에서 고려초기로 추정된다.
고려 충숙왕 4년(1317) 청풍현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王師)가 되어 청풍현이 군(郡)으로 승격한 기념으로 객사의 동쪽에 중창한 누각이다.
조선 태조 6년(1397) 군수 정수홍(鄭守弘)이 중수, 인조 12년(1634) 권경기(權璥己)가 개창, 고종 7년(1870) 부사 이직현(李稷鉉)이 중수, 1972년 8월 19일 수해 때 붕괴로 1976년 4월 복원(復元)하였다. 1900년(광무 4) 중수되었다. 태종(太宗) 6년(1406)에 군수 정수홍(鄭守弘)이 중수(重修)하고, 고종(高宗) 7년(1870)에 중수하였다.
이 누의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2층의 팔작지붕이며, 서측에서 계단식으로 누에 오를 수 있게 부설한 익랑(翼廊)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누의 공포는 이익공(二翼工), 익랑(翼廊)은 초익공(初翼工)이며, 누는 부연(附椽)이 있는 겹처마이나 익랑은 부연이 없는 홑처마이다. 누의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고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난 연등천장이나, 동측 합각 밑을 가리려고 우물천장을 일부 가설하였다.
누각에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창석(蒼石) 이준(李晙) 등의 편액은 홍수로 유실되어 2002년 송시열의 ‘한벽루(寒碧樓)’의 현액과 하륜의 ‘한벽루중수기(寒碧樓重修記)’를 복원하였다.
이 누상은 기둥 사이를 개방하고 사방에 난간을 둘러서 누관(樓觀)은 호서제일로 시인묵객이 시문부(詩文賻)를 읊던 곳으로 우륵의 예맥을 전승한 청풍승평계의 506율의 관현악을 연주한 유서 깊은 터전이다.
한벽루의 특색은 간결하고 단아하며 경승과 어우러진 누(樓)로 밀양의 영남루(보물 제147호), 남원의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더불어 3대 누각으로 손꼽힌다.
고려시대 주열(~1287)의 한벽루 시에,
水光澄澄鏡非鏡(수광징징경비경) 물빛이 맑고 맑아 거울아닌 거울이요
山氣靄靄煙非煙(산기애애연비연) 산 기운 자욱하여 연기아닌 연기로다
寒碧相凝作一縣(한벽상응작일현) 차고[寒] 푸름[碧] 서로 엉기어 한 고을 되었거늘
淸風萬古無人傳(청풍만고무인전) 맑은 바람을[淸風] 만고에 전할 이 없네
1907년 때의 일이다. 이 무렵 청풍에는 김장군이란 의병장이 머물고 있었다. 왜병들과 싸움이 없던 어느 날 김장군은 칼을 짚고 앉아 잠깐 조는 사이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센 노인이 나타나더니 김장군에게 간절히 청을 드리는 것이었다. “나는 강물 속에서 몇 백년을 살아온 이심인데 이제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건너편 바위 속에 천년 묵은 지네가 먼저 용이 되어 승천하려고 괴롭히고 있어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내가 꾀를 써서 지네를 꾀어 낼테니 장군께서 지네를 잡아 주시오.”
김장군은 어찌 인간인 자기가 그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느냐 되물었다. 그랬더니 꿈속의 노인은, “오늘밤 자정에 한벽루에서 큰 잔치를 열어 지네를 청할 테니 지네가 와서 잔치자리 앞에 마련한 제단 위에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단칼에 내리쳐 주시오.” 하는 것이었다.
밤이 깊어 의병들이 잠든 사이에 김장군은 의병 막사를 빠져나와 강변에 어스름이 서 서있는 한벽루로 다가갔다. 꿈에 본 백발 노인이 어스름한 달빛아래 온갖 기름진 음식과 술들을 차려 놓고 지네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풍악소리는 요란하지만 풍악쟁이는 보이지 않는다.
음식상앞 제단에는 커다란 칼이 놓여 있었다. 김장군은 제단의 칼을 들어 한번 휘둘러보고는 한벽루 아래 한 구석에 숨었다. 쏴쏴 하는 소리가 나더니 스무자는 족히 되는 김 몸뚱이를 꿈틀거리며 한벽루에 오르는 것이다. 벼락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빛도 잔치자리도 사라졌으며 김장군도 그 자리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침이 되어 김장군은 동네사람들과 부하들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정신을 되찾았다. 까닭을 묻는 사람들에게 김장군은 손가락으로 강 건너 암벽을 가리켰다. 암벽에 뚫린 굴에는 꼬리부분만이 밖으로 나온 지네가 보였다. 사람들 입에서는 “지네 지네”하는 놀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음날 밤 꿈속에 백발 노인이 다시 나타났다 하는 말이 “장군의 덕으로 저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군께서는 지네를 죽이지 못하고 상하게만 했으니 지네란 놈이 앙심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각별히 몸조심하라고 이른 후 백발노인은 홀연히 사라졌다.
김장군은 얼마후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고 말았다. 김장군이 숨을 거둘 무렵 한벽루에 있었던 이심과 지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후 한벽루 건너편 암벽에 뚫린 바위를 ‘지네굴’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 지금도 지네굴에서 지네가 나타나면 상스럽지 못한 일이 생긴다고 여긴다. 1972년 지네굴에서 지네가 나온 일이 있는데 그 때 대홍수가 나서 한벽루가 무너진 일이 있었다. 지금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었다.